로고 공모전 낙선 복기 — XX의원 로고는 왜 떨어졌을까 (낙선전 ①)
결과 발표일에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로고 공모전 플랫폼의 결과 페이지를 몇 번 새로고침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며칠을 매달려 만든 로고가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로고를 읽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로고에 관한 가장 좋은 교재는 성공한 로고가 아니라 실패한 로고, 그것도 자기가 실패한 로고라는 것입니다. 남의 성공은 결과만 보이지만 나의 실패는 과정 전체가 보이니까요. 그래서 새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름은 낙선전(落選展). 공모전에 출품했다 떨어진 제 로고들을 하나씩 걸어 놓고, 남의 로고를 채점하던 그 기준으로 제 로고를 채점하는 전시회입니다.
시작 전에 이 시리즈의 원칙 하나만 밝혀 둡니다. 브리프는 의뢰 고객이 쓴 글이자 그분의 사업 정보이기도 해서, 원문을 옮기지 않고 디자인 판단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제 언어로 요약합니다. 복기의 칼날은 의뢰나 심사가 아니라 언제나 제 작업을 향합니다.
1편은 미용 클리닉 'XX의원'에 출품했던 로고입니다.
브리프 읽기 — "Nature doesn't rush"
의뢰는 새로 문을 여는 미용 의료 클리닉의 로고였습니다. 브리프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혼자 방문해도 불편하지 않은 따뜻한 분위기. '온실'이라는 공간에서 식물처럼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피부를 돌본다는 의미. 심볼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최대한 단순할 것. 텍스트는 과도하지 않으면서 명확한 라인 감각과 정제된 타이포그래피. 의료기관의 신뢰성과 미용 클리닉의 세련됨을 동시에. 참고 브랜드로는 이솝과 로에베가 적혀 있었고, 피하고 싶은 것은 장식이 많은 것, 얇고 불명확한 글자, 그리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이었습니다.
키워드 중에 눈에 박힌 문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Nature doesn't rush."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미용 시술을 파는 병원이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흥미로운 역설입니다. 빨리 예뻐지고 싶어 오는 손님에게, 우리는 식물을 기르듯 천천히 가꾸겠다고 말하는 셈이니까요. 저는 이 문장을 이 브랜드의 심장으로 읽었고, 로고도 여기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낸 답 — 한글 자소로 지은 온실
제 답은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로고였습니다. 한글 '온실의원' 네 글자를 일정한 굵기의 라인으로 다시 그렸습니다. 획의 끝을 부드럽게 말아 식물의 줄기와 새순을 암시하되, 골격은 기하학적으로 유지해서 '장식적'으로 흐르지 않게 잡았습니다. 브리프가 요구한 "명확한 라인 감각"과 "성장의 암시"를 글자 자체에서 동시에 해결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심볼은 '온'과 '실'의 첫 자소인 ㅇ과 ㅅ을 겹치고, '의원'의 두 개 'ㅇ'을 조합하여 만든 모노그램이었습니다. 네 자소가 서로 감아 올라가는 형태로, 온실 안에서 덩굴이 자라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여기에 "오늘도 나를 가꾸는 온실"이라는 서브 카피를 붙였고, 영문 ONSIL CLINIC은 기하학적 산세리프로 별도 조판해 "Nature doesn't rush"를 얹었습니다.
색은 세 방향을 준비했습니다. 의료기관의 신뢰를 맡을 딥 네이비, 세련됨을 밀어붙이는 선명한 코발트 블루, 그리고 온실이라는 이름에 정직한 그린. 로고 시안만 놓고 보면 저는 이 세 벌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도 형태 자체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떨어졌습니다.
복기 ① — 나는 텍스트를 읽고, 이미지를 읽지 않았다
낙선 후에 브리프를 다시 열었을 때, 그제야 보인 것이 있습니다. 브리프에 첨부되어 있던 참고 이미지들입니다. 따뜻한 우드 톤의 가구, 베이지와 크림색의 패브릭, 낮은 조도의 부드러운 빛. 이솝 매장을 닮은, 철저하게 웜톤으로 통일된 공간이었습니다. 목업을 만들며 저도 그 공간에 로고를 얹어 봤으면서, 정작 색을 정할 때는 그 공간을 잊고 있었습니다.
제 주력 시안은 쿨톤 네이비와 코발트 블루였습니다. 로고 단독으로는 신뢰감 있고 세련된 색입니다. 하지만 저 우드 톤 공간의 간판이 되고, 크림색 타월 옆의 패키지가 되는 순간 어떨까요. 선명한 파랑은 그 공간에서 가장 이질적인 물체가 됩니다. 위 목업에서 로고가 흰색인 이유도 사실 자백에 가깝습니다. 네이비 원색을 그 공간에 올려 보니 어울리지 않아서, 목업에서만 흰색으로 바꿔 얹었던 것입니다. 그때 알아챘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교훈이 나옵니다. 로고는 단독으로 심사받지 않습니다. 브랜드가 살아갈 공간 안에서 심사받습니다.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세계는 브리프의 텍스트가 아니라 첨부된 이미지에 더 정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텍스트는 "색상 제한 없음"이라고 말했지만, 이미지는 처음부터 웜톤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복기 ② — 심볼은 나에게만 읽혔다
두 번째 문제는 심볼입니다. ㅇ과 ㅅ의 결합은 만든 사람에게는 명쾌한 아이디어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 형태는 자소로 읽히기 전에 그냥 '말려 있는 곡선 두 개'로 보입니다. 기아의 KN 사례를 다루며 썼던 문장을 제 로고에 그대로 돌려받는 순간입니다. 디자이너는 의도를 보고, 처음 보는 사람은 형태만 봅니다.
공모전이라는 형식이 이 문제를 증폭시킵니다. 수십 개의 시안이 한 화면에 썸네일로 깔리고, 심사하는 사람의 눈이 시안 하나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몇 초입니다. 그 몇 초 안에 설명 없이 전달되지 않는 아이디어는, 공모전에서는 없는 아이디어와 같습니다. 제안서에서 심볼의 의미를 정성껏 설명했지만, 몇 초의 첫인상 싸움에서 설명은 출전 자격이 없습니다.
더 뼈아픈 지점은 그 곡선의 인상입니다. 획 끝이 동글동글 말린 형태는 새순을 의도했지만, 시안을 몇 주 뒤에 다시 보니 브리프가 명시적으로 피하고 싶다던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경계에 서 있었습니다. 30~50대 여성이 주 고객인 의료기관이 원한 것은 어른의 절제였는데, 제 심볼은 반 발짝 더 어려 보였을 수 있습니다. 피하라고 적어 준 것을 정확히 피했는지 자문했을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답입니다.
MARKIVE 자가 채점
남의 로고에 하던 대로 MARKIVE 7원칙으로 제 출품작을 채점해 봅니다. [확인: 점수는 초안 제안입니다 — Jin 님 판단으로 조정하세요]
M(의미) 12/15 — "Nature doesn't rush"를 형태로 옮기려 한 방향은 지금도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A(진정성) 11/15 — 온실이라는 이름에서 나온 이야기라 출처는 분명하지만, 이솝풍 미니멀리즘이라는 유행의 문법 안에 있었습니다. R(인지성) 9/15 — 워드마크는 읽히지만 심볼은 설명 없이 읽히지 않습니다. K(단순함) 15/20 — 요소는 절제했으나 말린 획들이 작은 크기에서 뭉칩니다. I(아이디어) 8/10 — 자소 모노그램이라는 발상 자체는 유효합니다. V(가치) 7/10 — 판정 유보에 가깝습니다. 시간이 증명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까요. E(감정) 10/15 — 따뜻함을 의도했지만, 쿨톤 원색이 그 감정을 절반쯤 지웠습니다.
합계 72점. 제 기준표로 '준수' 등급입니다. 떨어질 만큼 나쁘지 않았지만, 뽑힐 만큼 정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공모전은 준수한 로고가 아니라 그 브랜드에 정확한 로고를 뽑는 자리이고, 정확함의 마지막 한 뼘은 형태가 아니라 색과 공기에서 갈렸습니다.
MARKIVE 노트
낙선작을 공개하는 것이 블로그에 손해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반대였습니다. 로고를 읽는 일과 로고를 만드는 일은 다른 근육이고, 만드는 쪽의 실패를 겪어 본 사람의 읽기가 더 깊어진다고 믿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수업료의 기록입니다.
브리프의 문장 하나로 시작한 로고가, 결국 그 브리프의 이미지 한 장을 놓쳐서 떨어졌습니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말은 로고 만드는 일에도 적용됩니다. 다음 낙선전에서 또 한 장을 걸겠습니다. 언젠가 이 시리즈의 제목을 '당선전'으로 바꿔 쓰는 날이 오면, 그건 여기 걸린 로고들 덕분일 것입니다.
내 브랜드의 로고를 직접 만들고 있다면, 시작 전에 로고 만드는 법 가이드를 먼저 읽어 보셔도 좋습니다.
로고를 읽다, Mark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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