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로고 이야기 — KN으로 읽히던 글자는 어떻게 5년 만에 호평을 받았나
그런데 며칠 뒤, 태평양 건너 미국의 커뮤니티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게시물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도로에서 찍은 SUV 사진 한 장과 함께 달린 질문입니다. "이 KN이라는 차는 어디 브랜드인가요?"
하늘에 그린 글자를 땅에서는 다르게 읽었습니다. 오늘 Markive가 읽을 로고는 바로 이 엇갈림, 기아 로고의 이야기입니다.
1장. 起亞 — 이름에 이미 '상승'이 들어 있었다
기아라는 이름은 1944년에 시작된 회사의 두 번째 이름입니다. 첫 이름은 경성정공. 서울 영등포의 작은 공장에서 자전거 부품과 강관을 만들던 회사였습니다. 해방과 전쟁을 지나 1951년 국산 자전거 '삼천리호'를 내놓았고, 이듬해인 1952년 회사 이름을 기아산업으로 바꿉니다.
기아(起亞)는 '일어날 기'에 '아시아 아'입니다. 아시아에서 일어나 세계로 나간다는 뜻입니다. 창업자 김철호는 발음이 자동차 핵심 부품인 기어(gear)와 비슷하고, 한중일 세 나라에서 같은 글자로 읽히며, 영문 표기 Kia도 짧아 국제화에 알맞은 이름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기 로고들도 이 이름의 궤적을 따라갔습니다. 1950년대의 로고는 톱니바퀴 모양의 원 안에 KIA를 넣은 복잡한 기하학 구성이었는데, 자전거와 부품을 만들던 공장의 자화상에 가까웠습니다. 1964년에는 글자가 사라지고 초록색 원에 오른쪽 위로 삐져나온 획 하나가 붙은 심볼이 등장합니다. 뒤집힌 Q처럼도 보이고, K의 한 획처럼도 보이는 형태입니다. 이미 이때부터 기아의 로고에는 '오른쪽 위'라는 방향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멈춰 볼 가치가 있습니다. 2021년 새 로고의 세 가지 콘셉트가 '균형, 리듬, 상승'이었습니다. 그중 '상승'은 70년 전 이름에 이미 새겨져 있던 단어였습니다. 새 로고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게 아니라, 회사가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을 형태로 번역한 셈입니다. 이것이 Markive가 말하는 A(진정성)의 출발점입니다. 이야기의 출처가 회사 바깥이 아니라 회사의 이름 안에 있었습니다.
2장. 붉은 타원의 27년 — 배지가 차를 따라가지 못한 시대
1994년, 기아는 붉은 타원 안에 KIA를 넣은 로고를 채택합니다. 무난하고 안전한 형태였습니다. 타원 배지는 당시 자동차 업계의 공용어에 가까웠습니다. 포드도 토요타도 현대도 타원이나 원 안에 글자나 심볼을 넣었습니다. 기아의 타원은 "우리도 그 리그에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러나 타원이 달린 3년 뒤인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기아는 부도를 맞습니다. 1998년 현대자동차가 기아를 인수하면서 회사는 살아남았지만, 세계 시장에서 기아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저렴한 차'와 같은 뜻이었습니다. 붉은 타원은 그 시절 내내 기아의 얼굴이었습니다.
전환은 2006년에 옵니다. 아우디 TT를 디자인한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 디자인 총괄로 합류했고, '타이거 노즈'라 불리는 그릴 디자인과 함께 기아의 차들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K5, 스포티지, 쏘울이 해외에서 디자인상을 받았고, '디자인 기아'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기아 차를 사는 이유가 '싸서'에서 '예뻐서'로 바뀌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슈라이어가 가져온 것은 그릴 모양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브랜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얼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그 결과 어떤 모델을 보아도 기아임을 알아볼 수 있는 일관성이 생겼습니다. 로고로 치면 R(인지성)을 차체 전체로 확장한 셈입니다. 2012년에는 붉은 타원 로고도 미세하게 다듬어졌지만, 그 변화를 알아챈 소비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배지는 그대로였습니다. 차는 달라졌는데 보닛 위의 타원은 1994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021년 새 로고가 공개되었을 때 한 해외 매체가 옛 로고를 두고 "주류 자동차 브랜드 중 가장 볼품없는 로고였다"고 평한 것은 가혹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차와 배지 사이의 간격이 27년 동안 벌어져 있었습니다.
기아 로고를 둘러싼 82년의 사건들. 빨간 점이 이 글의 두 축, 2021년 공개와 2026년 재평가입니다.
3장. 한 획으로 이어진 KIA — 새 로고 해부
새 로고가 태어난 시기의 기아 디자인은 슈라이어의 뒤를 이은 카림 하비브 체제였습니다. BMW와 인피니티를 거친 그가 2019년 기아 디자인 총괄로 합류했고, 새 로고와 함께 EV6, EV9 같은 전기차 디자인이 그의 손을 거쳐 나왔습니다. 로고 교체가 단독 프로젝트가 아니라 디자인 세대교체의 일부였다는 뜻입니다.
새 로고는 독일 뮌헨의 디자인 스튜디오 블랙스페이스와 기아 인하우스 팀이 함께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타원이 사라졌습니다. 글자를 감싸던 테두리를 걷어내고 글자 자체가 심볼이 되었습니다. 둘째, 색이 바뀌었습니다. 1994년부터 쓰던 빨강을 버리고 검정을 기본색으로 삼았습니다. 셋째, 세 글자가 한 획으로 이어졌습니다. 펜을 떼지 않고 쓴 서명처럼 K에서 I로, I에서 A로 선이 흐릅니다. A의 가로획은 없습니다.
기아는 이 형태를 '균형, 리듬, 상승'으로 설명했습니다. 균형은 좌우 대칭에 가까운 글자 구조, 리듬은 이어지는 선의 흐름, 상승은 오른쪽 위로 들리는 획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같은 날 슬로건도 바뀌었습니다. The Power to Surprise에서 Movement that inspires로. 그리고 열흘 뒤인 1월 15일, 회사 이름에서 '자동차'가 빠졌습니다. 기아자동차가 아니라 기아. 자동차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는 선언이었습니다.
빨강에서 검정으로의 전환도 우연이 아닙니다. 2020년 기아가 발표한 중장기 전략 '플랜 S'의 핵심은 전기차였고, 새 로고는 그 전략의 얼굴로 기획되었습니다. 전기차 시장에서 검정은 프리미엄과 기술을 뜻하는 색으로 통합니다. 붉은 타원이 '대중차 기아'의 색이었다면, 검은 서명은 'EV6를 만드는 기아'의 색입니다. 색 하나로 브랜드가 서고 싶은 자리를 옮긴 것입니다.
공개 방식도 메시지의 일부였습니다. 코로나로 오프라인 행사가 불가능하던 시기에, 기아는 발표회장 대신 하늘을 택했습니다. 303대의 드론이 불꽃을 뿜으며 로고를 그리는 영상은 "로고가 공개되었다"가 아니라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인상을 남기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새 슬로건의 첫 단어가 Movement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드론 쇼는 슬로건을 시각화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새 로고가 완전히 새롭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기아가 쓰던 로고에도 이어 쓴 듯한 글자 위에 물결 모양의 선이 얹혀 있었습니다. 2021년 로고는 그 물결을 걷어내고 글자만 남긴 것처럼 보입니다. 타원의 27년은 어쩌면 우회로였고, 기아는 원래 가던 길로 돌아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4장. KN — 하늘의 글자를 땅에서는 다르게 읽었다
문제는 A였습니다. 가로획이 없는 A는 뒤집힌 V처럼 보이고, 그 앞의 I와 선이 이어지자 두 글자가 합쳐져 N으로 읽혔습니다. KIA가 KN이 된 것입니다.
타이포그래피의 관점에서 보면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로마자 알파벳에서 글자를 구분하는 장치는 획의 유무와 연결 방식입니다. A의 가로획은 A를 A로 만드는 최소 조건에 가깝고, 그것을 없애면 눈은 가장 가까운 익숙한 형태를 찾습니다. 그 형태가 N이었습니다. 특히 차가 움직이는 상태에서, 혹은 멀리서 배지를 볼 때 이 오독은 더 자주 일어납니다. 디자이너는 정지된 화면에서 로고를 보지만, 소비자는 주차장과 고속도로에서 봅니다.
한국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한국 사람은 저 차가 기아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로고는 이미 아는 사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한 장치입니다. 미국 IT 매체 더버지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새 로고 공개 이후 구글에서 'KN car'라는 검색어가 매달 3만 건 가까이 입력되었습니다. 구글 트렌드에는 'What is KN', 'KN SUV', 'KN 카니발' 같은 검색어가 영어권 국가에서 잡혔습니다. 레딧에는 기아 차를 찍고 "KN 자동차 모델이 뭐죠?"라고 묻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국내에서도 다른 종류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부산·경남 지역 민영방송 KNN의 로고가 기아보다 15년 먼저 비슷한 방식으로 글자를 이은 형태였다는 것입니다. 부산 사람들은 기아 차를 볼 때마다 지역 방송국이 떠오른다고 농담했습니다.
기아는 로고를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논란이 커지던 2022년에도, 그 뒤로도 획을 더하거나 형태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리브랜딩 직후 역풍을 맞고 로고를 되돌린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버티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선택이었습니다. 로고가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판단, 혹은 제품이 로고를 설명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로고 이론으로 보면 이는 R(인지성)의 실패처럼 보입니다. 로고의 첫 번째 임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리는 것인데, 그 임무에서 오독이 생겼으니까요. 당시 온라인 여론은 "역대급 실패작"과 "몇 년 지나면 익숙해질 것"으로 갈렸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월 3만 건의 'KN car' 검색은, 뒤집어 보면 월 3만 명이 기아 차를 보고 "저 차 뭐지?" 하고 궁금해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붉은 타원 시절에 기아 차를 보고 검색창을 연 사람이 그만큼 있었을까요? 오독은 분명 문제였지만, 동시에 관심의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로고보다는 잘못 읽히는 로고가 더 많이 기억됩니다.
5장. 5년 뒤 — 로고가 차를 바꾼 게 아니라, 차가 로고를 증명했다
2026년 지금, 같은 로고를 두고 평가는 달라졌습니다. 국내 커뮤니티 위키에는 "유출 당시와 다르게 상당히 호평받고 있다"는 서술이 올라왔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로고는 한 획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은 그 로고를 달고 다니는 차들입니다. 2021년 이후 기아의 해외 판매는 매년 기록을 새로 썼고, 2023년에는 연간 300만 대를 넘었습니다. EV6와 EV9는 유럽과 북미에서 '올해의 차' 계열 상을 받았고, 2024년 인터브랜드 글로벌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 기아는 전년 대비 10% 이상 오른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기에 로고 이야기의 핵심이 있습니다. 로고는 약속어음과 같습니다. 공개되는 날 로고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는 이런 브랜드가 되겠다"는 약속뿐입니다. 그 어음을 결제하는 것은 로고 자신이 아니라 제품입니다. 기아의 새 로고는 2021년에 '균형, 리듬, 상승'을 약속했고, 그 뒤 5년 동안 기아의 차들이 그 약속을 갚았습니다. 좋은 차 앞에 달린 낯선 배지는 곧 좋은 차의 배지가 됩니다.
KN 검색도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2022년의 'KN car' 검색이 "저게 뭐지?"였다면, 지금 그 검색어로 들어온 사람은 첫 화면에서 답을 얻고 기아의 차 목록을 보게 됩니다. 잘못 읽힌 글자가 기아로 가는 입구가 된 것입니다. 로고 하나가 의도하지 않은 검색어를 하나 더 가진 셈이니, 마케팅 관점에서는 손해만은 아니었습니다.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 보면 더 선명합니다. 새 로고를 달고 나온 차들이 평범했다면 KN은 지금도 조롱거리였을 것입니다. 로고의 운명은 공개일이 아니라 그 뒤 5년이 정합니다.
이것은 Markive가 삼성 로고를 읽으며 본 흐름과 닮았습니다. 삼성의 파란 타원도 1993년 채택 당시에는 평범한 워드마크라는 평을 들었지만, 그 뒤 30년의 제품이 그 타원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는 로고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한국 기업의 로고에는 이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형태보다 형태를 증명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입니다.
MARKIVE 노트
기아 로고를 MARKIVE 7원칙으로 채점하면 몇 점이 나올까요? 이 글은 점수를 매기는 글이 아니라 이야기를 읽는 글이라 채점은 다음 리뷰로 남겨두겠습니다. 다만 힌트 하나는 남길 수 있습니다. K(단순함)와 A(진정성)는 높을 것이고, R(인지성)은 KN 문제로 감점이 불가피하지만 5년의 시간이 그 감점을 일부 되돌려 놓았습니다. 채점 기준이 궁금하다면 MARKIVE 7원칙 안내 글을 먼저 읽어 두시면 좋습니다.
자기 브랜드의 로고를 고민하는 분에게 기아의 5년은 두 가지를 말해 줍니다. 하나, 로고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읽히는지는 공개 전에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는 것. 기아 정도의 회사도 A의 가로획 하나로 월 3만 건의 오독을 만들었습니다. 둘, 그럼에도 로고를 살리는 건 수정이 아니라 제품이라는 것. 로고에 쏟을 힘의 절반은 로고 뒤에 올 것에 남겨 두는 편이 낫습니다.
드론 303대가 하늘에 그린 글자를 사람들은 KN으로 읽었습니다. 5년 뒤, 같은 글자를 사람들은 기아로 읽습니다. 글자는 그대로인데 읽는 법이 바뀌었습니다. 로고를 바꾸는 건 디자이너지만, 로고를 완성하는 건 그 뒤에 오는 시간입니다.
이 로고의 공식 파일이 필요하다면 — 로고는 각 브랜드의 자산이므로, Markive는 파일을 배포하지 않고 공식 출처를 안내합니다: 기아 새 로고(블랙) — 기아 글로벌 미디어센터 · 기업 이미지 갤러리 · 기아 브랜드 로고 스토리(공식). 미디어센터 자료는 언론·보도용으로 제공되는 것이므로, 사용 전 기아의 이용 약관을 확인하세요.
로고를 읽다, Mark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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