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평가 기준 만들기 — 7원칙은 어떻게 태어났나 (Markive 탄생기 ③)
이름과 로고가 완성되고 나서, 이상한 허전함이 남았습니다. "로고를 읽는 블로그"를 만들겠다면서, 정작 무엇으로 읽을 것인지가 없었던 겁니다. 리뷰를 하려면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남의 로고를 "느낌상 좋다/별로다"로 평가하는 건 리뷰가 아니라 감상이니까요.
기준 없는 리뷰의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글마다 잣대가 달라져서 리뷰끼리 비교할 수 없습니다 — 나이키에게 후하고 애플에게 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점수는 취향 고백일 뿐입니다. 둘째, 독자가 가져갈 것이 없습니다. 좋은 리뷰라면 읽고 난 독자가 같은 기준으로 다른 로고를, 나아가 자기 로고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준은 명확해야 하고, 기억하기 쉬워야 했습니다.
기준을 어디서 가져올까 고민하던 어느 날, 블로그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봤습니다. M, A, R, K, I, V, E — 일곱 글자. 그 순간 아이디어가 스쳤습니다. 좋은 로고의 조건도 일곱 개라면, 이름 자체가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름을 기준으로 삼으면 얻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독자는 브랜드명만 기억하면 일곱 원칙이 따라오고, 저희는 리뷰를 쓸 때마다 이름을 되새기게 됩니다. 브랜드와 콘텐츠가 한 몸이 되는 구조 — 아이디어로서는 매력적이었습니다. 남은 건 실행이었죠.
일곱 글자에 일곱 원칙을 담다
글자마다 원칙을 배정하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어떤 글자는 기다렸다는 듯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M은 Meaning(의미) — 로고는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라는, 이 블로그의 출발점. K는 Keep it simple(단순함) — 로고 디자인의 오랜 제1원칙. E는 Emotion(감정) — 결국 로고는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결론.
반면 어떤 글자는 고민을 요구했습니다. I에는 Idea(아이디어)를 — 페덱스의 숨은 화살표 같은 "한 끗"을 담았고, R은 Recognition(인지성), V는 Value(가치), A는 Authenticity(진정성)로 정리되었습니다. 그렇게 초안이 완성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됐습니다. 이름 글자에 꿰맞춘 원칙이 실제로 타당한가를 확인해야 했으니까요.
고전과 대조하다 — 빠진 것이 있었다
로고 디자인에는 이미 검증된 고전 원칙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Logo Design Love」의 저자 데이비드 에어리(David Airey)가 정리한 다섯 가지 — 단순할 것(simple), 기억될 것(memorable), 오래갈 것(timeless), 어디서든 쓰일 것(versatile), 어울릴 것(appropriate). "로고는 단순해야 한다"는 폴 랜드(Paul Rand) 이래 업계의 상식이기도 합니다.
7원칙 초안을 이 고전과 나란히 놓고 대조해봤습니다. K는 simple과, R은 memorable과 정확히 겹쳤습니다. 다행이었죠. 그런데 빠진 것이 둘 있었습니다. timeless(시대를 타지 않을 것)와 versatile(범용성). 고전이 수십 년 검증한 조건을 빼놓고 "우리 기준"이라 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해법은 새 글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원칙에 흡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timeless는 V(가치)로 —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아야 가치가 쌓이니, 가치의 전제 조건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갑니다. versatile은 K(단순함)로 — 단순해야 파비콘부터 간판까지, 흑백에서도 작동하니, 단순함의 존재 이유가 곧 범용성입니다. 이 흡수 과정을 거치며 7원칙은 이름 놀이가 아니라 고전의 어깨 위에 선 체계가 되었습니다.
가장 오래 싸운 문제 — M과 A는 같은 말 아닌가
검증 과정에서 가장 오래 붙든 질문은 따로 있었습니다. "의미(M)와 진정성(A), 결국 같은 이야기 아닌가?" 의미 있는 로고면 진정성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계속 나왔거든요.
결론은 로고 편에서 잠깐 언급한 혼합안 사건이 내려줬습니다. 그 시안들은 분명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때 깨달은 겁니다 — M은 이야기의 존재를 묻고(무엇을 말하는가), A는 이야기의 출처를 묻는다(정말 너의 것인가)는 것을. 의미 있는 콘셉트를 베낀 로고는 M은 통과해도 A에서 탈락합니다. 독창적이지만 아무 이야기가 없는 로고는 A는 통과해도 M에서 탈락합니다. 두 원칙은 같은 말이 아니라, 서로가 놓치는 것을 잡아주는 짝이었습니다.
배점 —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선언하다
원칙이 확정되자 마지막 질문이 남았습니다. 일곱 원칙이 모두 똑같이 중요한가? 리뷰에 점수를 매기려면 답해야 했습니다. 100점을 일곱으로 나누면 14.28점 —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이 숫자가 오히려 기회였습니다. 배점 자체가 "Markive는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가"라는 관점 선언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K(단순함)에 최고 배점 20점을 줬습니다. 단순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고(R), 작게 쓸 수 없고, 이야기가 있어도 전달되지 않습니다(M) — 나머지 원칙이 설 자리를 만들어주는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V(가치)는 10점입니다. 시간이 증명하는 항목이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로고에게는 판정을 유보할 여지를 남겨둔 것입니다. M, A, R, E는 각 15점, I는 10점 — 그렇게 100점이 완성되었습니다.
점수에는 등급도 붙였습니다. 90점 이상은 마스터피스, 80점대는 수작, 70점대는 준수, 60점대는 아쉬움, 그 아래는 재고 필요. 앞으로 리뷰마다 이 등급이 최종 판정으로 선언될 것입니다. 과연 첫 마스터피스는 어떤 로고가 될까요 — 저희도 궁금합니다.
MARKIVE 노트
정리하며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고전 원칙들이 로고가 기능하는 조건(단순하고, 기억되고, 오래가고)을 묻는다면, 저희가 더한 M·A·I·E는 로고가 마음에 남는 조건 (이야기가 있고, 진짜이고, 발견의 재미가 있고, 감정을 남기는)을 묻습니다. 7원칙은 그 둘을 한 이름 안에 담으려던 시도였습니다.
돌아보면 탄생기 세 편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였습니다. 이름은 다섯 번의 퇴짜 끝에, 로고는 여섯 번의 소거 끝에, 철학은 고전과의 대조 끝에 나왔습니다. 셋 다 첫 답이 아니라 버린 것들의 끝에서 나온 셈입니다. 브랜드를 만들고 계신 분이라면, 지금 버리고 있는 그 시안들이 정답의 좌표를 좁혀주고 있다고 — 저희의 경험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이 기준의 전체 해설은 좋은 로고의 조건 7가지 — MARKIVE 7원칙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연재가 끝났으니, 다음부터는 이 일곱 개의 렌즈로 진짜 로고들을 읽으러 갑니다. 첫 손님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획 — 나이키 스우시입니다.
탄생기 연재 — ① 이름 편 · ② 로고 편(게시 후 링크 연결) · ③ 철학 편(이 글)
로고를 읽다, Mark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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